인도양 북 센티넬섬 원주민

인도양에 있는 북 센티넬 섬의 원주민들은 최소 수천년간 외부 접촉없이 생활을 해온 것으로 추정되고 2018년 11월 미국국적 선교사 26살 존 앨런 차우가 센티넬섬 원주민들을 선교하기 위해 방문했다가 살해당해 한동안 떠들썩 했던 적이 있다.

북 센티넬 섬은 인도 본토보다 말레이시아와 근접해 있지만 북 센티넬 주변의 섬들은 인도령이다.

인도는 센티넬섬 원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북 센티넬섬 주변 5km이내 접근 금지를 내려 북센티넬섬 주변 5km 이내로 접근하는건 불법이다.

북센티넬섬은 안다만 앤드 니코바르 제도에 있는 섬중 한개로 북센티넬 섬을 제외하면 주변 섬의 원주민들은 1700~1800년대 외부와 접촉을해 현재 안다만 앤드 니코바르제도에 있는 섬들의 원주민들중 외부와 단절한 상태의 원주민은 북 센티넬 원주민들 뿐이다.

북센티넬섬 원주민들이 언제부터 북센티넬에 정착을 했는가는 모르나 5만~6만년전 부터 살았을 것이란 주장도 있고 수만년이 아니라 수천년전 부터 살았을 것이라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인도의 영국 식민지 시절 니코바르 제도엔 숌펜, 니코바레즈 2개의 인종적으로 몽골족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고 니코바르 제도 윗쪽에 있는 안다만 제도엔 센티넬레즈, 자라와, 대안다마네즈, 옹게등 인종적으론 4개의 흑인 부족들이 살고 있었다.

위 6개의 원주민중 센티넬레즈(북 센티넬섬 원주민)를 제외하면 모두 외부와 접촉을 했다.

아래 동영상은 인도 인류학자 마드후말라 차토파디야이와 저 애의 동료들이 1991년 촬영한 동영상으로 당시 북 센티넬 섬에 들어간 사람들 모두는 신변에 어떤 불상사가 생기든 어떤 권리도 주장하지 않는다는 각서를 쓰고 저 섬에 들어갔다.

마드후말라 차토파디야이에 따르면 당시 접근을 알리기 위해 보트에 연기를 피우며 접근했고 후에 활로 무장한 사람들을 포함해 남자 원주민들이 나왔고 저에 코코넛을 바다로 띄웠다고 하며 위 동영상은 코코넛을 바다에 던질때 장면이다.

코코넛을 바다에 던지니 2~3시간 후 남자 원주민들과 주변에서 지켜보던 여자 원주민들이 코코넛을 건지러 왔다고 하며 저 후에 원주민들이 살고 있는 섬 내륙까지 들어가 보진 못하고 해안에만 상륙해 한동안 있었다고 한다.

1991년 2번째 방문 했을때 사진
1991년 2번째 방문 했을때 사진
1991년 2번째 방문 했을때 사진
1991년 1월 첫번째 방문때로 위 사진 오른쪽이 마드후말라 차토파디야이

마드후말라 차토파디야이는 한 한달 후 다시 접근 했고 저땐 원주민들이 무기를 들고 나오지 않았다고 하나 당시 마드후말라 차토피디야이와 같이간 한 남자가 배위에 올라온 한 원주민의 잎파리로 만든 장식물을 만지려 했고 저에 원주민은 칼을 꺼내들며 화를내서 바로 떠났다고 한다.

마드후말라 차토피디야이는 2010년 “북 센티넬 섬에 살고 있는 원주민들은 수백년간 저 섬에서 아무 문제 없이 살았지만 외부인들이 저 섬에 들어가면 문제가 생긴다. 저 섬의 원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어떤 조취를 취할 필요는 없고 저 사람들을 그냥 내버려 두면 된다”라 말하며 북 센티넬 섬을 다시 방문할 생각이 없다고 말한적 있다.

북 센티넬 섬
안다만 제도에 있는 섬중 하나인 북 센티넬 섬

북 센티넬 섬 원주민들은 현재 지구상에 외부 세계와 완전 단절한체 생활하는 몇 안되는 부족중 하나라 거의 알려진게 없으나 저들은 사냥이나 게잡이 같은 어획으로 생활을 하는 것으로 보이고 원주민들이 농작물을 기른다는걸 입증할 수 있는 건 밝혀진게 없다.

하지만 근처 산호초에서 어획을 하기 위해 나무로 만든 배를 타고 다니는것으로 보아 배를 만드는 방법은 알고 있다.

안다만 제도엔 4개의 섬이 있는데 센티넬 원주민들의 언어와 바로 옆에 있는 큰 섬인 안다만섬과 주변 섬 원주민들 언어와는 서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다.

센티넬섬 원주민들이 완전 외부와 단절을 한상태라 전부 짐작 뿐이나 센티넬섬 원주민들이 바로 옆 큰 섬인 안다만섬에서 살다 수천년전 자발적으로 북 센티넬 섬에 들어가 정착을 한 사람들이란 주장이 있으나 확인할 방법은 없다.

1771년 동인도회사의 지질측량선이 북 센티넬 섬을 발견한 기록이 있으나 저 때 북 센티넬 섬에 선원들이 상륙을 하진 않았다.

1867년 여름 “니네베”란 상선이 북 센티넬 섬 산호초 주변에 배를 정박하고 보트로 해변에 도착했다. 약 3일 후 저들은 원주민들의 공격을 받고 저 후 영국군함이 도착해 상선 니네베의 선원들을 구조한적이 있다.

영국군함이 도착할때 원주민들은 보이지 않았었다.

1880년 당시 안다만과 니코바르 제도 식민지 감독관으로 있던 영국 해군 장교 모리스 비달 포트만이 군인과 아다만제도의 한 원주민을 데리고 북 센티넬 섬에 상륙했다.

모리스 비달 포트만과 안다만제도 원주민들 사진으로 위 사진에 센티넬섬 원주민은 없다.
모리스 비달 포트만과 안다만제도 원주민들 사진으로 위 사진에 센티넬섬 원주민은 없다.

상륙당시 북 센티넬섬 원주민은 숲으로 도망쳤고 모리스 포트만은 수일동안 원주민을 수색해 저들이 살던 집터를 발견했고 말이 통하지 않으니 교육을 시켜 정보를 알아 내려 했는진 모르나 원주민 성인 2명 어린이 4명을 납치한 후 블레어항구로 데리고 갔다.

생포된 북센티넬섬 원주민 성인 2명은 얼마안되 사망했고 어린이 4명도 병에 걸렸다.

모리스 포트만은 성인 2명이 사망하자 병든 어린이 4명을 다시 북 센티넬 섬으로 “매우 어리석고 멍청한 행동을 후회한다”는 쪽지와 함께 돌려 보냈다.

1896년 한 범죄자가 급하게 만든 뗏목을 타고 북 센티널 섬으로 도망쳤고 몇일 뒤 수색팀이 시체로 목에 화살이 박혀 사망한 범죄자를 북 센티넬 섬에서 발견 했다. 수색팀이 북 센티넬 섬에 상륙했을때 원주민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1899년 안다만과 니코바르 제도 총감독으로 일하던 리차드 카낙 템플은 “도망자들을 찾기 위해 북 센티넬 섬으로 갔고 섬에 상륙할때 도망자들의 시체를 발견 했으며 원주민들은 우리들을 보자 숲으로 들어갔다”는 보고서를 적었다.

리차드 카낙 템플

리차드 템플과 모리스 포트만은 한 북 센티넬섬 원주민이 표류를 해 옆에 있는 커다란 섬 안다만 섬의 아랫쪽에 있는 리틀 안다만섬에 살고 있던 옹게부족과 약 2년동안 살았다는 이야길 듣고 옹게부족과 2년동안 함께 살았다고 주장한 센티넬 원주민과 함께 북 센티넬 섬으로 갔지만 북 센티넬 원주민들은 옹게 부족과 2년동안 함께 살았다는 북 센티넬 원주민을 알아 보지 못하고 활을 쏘며 리차드 카낙 일행을 공격한다. 자기가 센티넬 원주민이었다고 주장한 사람은 북 센티넬 섬에 남길 거부하고 리차드 카낙과 같이 떠났다.

모리스 포트만은 센티넬 원주민으로 배가 표류해 2년간 옹게 부족과 함께 살았다는 사람의 주장은 잘못 통역된 것으로 옹게 부족과 2년동안 함께 살았다는 센티넬 원주민은 2년이 아니라 훨씬 이전부터 옹게 부족과 함께 살았었을 것으로 생각했다.

리차드 템플은 센티넬 원주민에 대해 “기억에서 잊혀진 자기 부족원이나 또다른 안다만제도 원주민이나 아니면 완전한 이방인을 봤을때 바로 공격적인 행동을 하진 않지만 자기들이 모르는 사람은 결국 전부 죽인다”라고 묘사했다.

저 후로도 인구조사등을 이유로 여러 차례 북 센티넬 섬을 방문한 적이 있으나 섬 원주민들과 이야길 한적은 없다.

1981년 8월 2일 방글라데시에서 호주로 닭 사료를 운반하던 1,6000톤급 화물선 프림로즈가 폭풍때문에 센티넬섬 주변 암초에 걸려 좌초된 적이 있다.

폭풍 때문에 센티넬섬 주변 암초에 걸려 좌초된 프림로즈 화물선

31명의 프림로즈 화물선 승무원들은 처음엔 주위에 화려한 장관의 섬도 있고 해서 크게 동요하지 않았으나 화물선 선장에 따르면 2틀 후 좌초된 배로 오려는 50여명의 센티넬섬 원주민들을 보고 겁에 질려 다급히 구조요청을 보냈고 조명탄, 도끼, 파이프등 임시변통으로 무기를 만들어 구조대가 올때까지 경계를 섰다고 한다.

31명의 프림로즈 화물선 승무원들은 결국 모두 헬리콥터로 구조됐고 프림로즈 화물선은 18개월간의 작업 끝에 해체가 됐는데 센티넬섬 원주민들이 해체작업을 할때 몇차례 방문해 과일과 작은 금속 조각들을 맞바꿔 갔었고 저 물물교환을 할때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센티넬섬 원주민들이 식인을 한다는 소문은 프림로즈 화물선 선장이 매스컴과 인터뷰를 했을때 “만일 우리 배에 바나나가 없었으면 잡아먹혔을 것이다”란 농담을해 퍼진 소문으로 북 센티넬섬 원주민들이 식인을 하는지 안하는지 현재로썬 알 방법은 없으나 섬 원주민들은 죽은 자를 매장을 하긴 하는 것으로 보이고 다른 안다만 섬의 원주민들 처럼 무언가를 믿긴 믿는 것으로 보인다.

1991년 마드후말라 차토피디야이와 저 여자의 동료들이 센티넬섬으로 갔을때 원주민들이 금속으로 만든 도구를 가지고 있는게 목격됐는데 저 금속 도구는 1981년 좌초된 프림로즈 화물선 해체작업중 과일과 맞바꾼 금속조각으로 만든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아래 구글 지도를 보다시피 현재도 해체작업이 끝난 프림로즈 화물선이 구글 어쓰에 보인다.

2006년 인도 어부 2명의 죽음

2006년 1월 27일 인도국적의 순데르 라즈, 판디트 티와리는 북 센티넬섬 주변에서 게를 어획하고 있었지만 북 센티넬섬 주위는 접근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에 당시 게어획은 인도법에 따라 불법이다.

게잡이를 마치고 잠을 잘때 배가 떠내려가지 않게 닻을 내려 놨지만 닻이 제역할을 못해 배가 북 센티넬섬쪽으로 떠내려 가고 마침 주변을 지나가던 어선이 배가 떠내려 가는걸 보고 경고를 하나 밤이라 순데르 라즈와 판디트 티와라가 잠을 자고 있었던 중이었는지는 모르나 배는 계속해서 센티넬 섬을 향해 떠내려 간다.

순데르 라즈와 판디트 티와리는 센티넬섬 원주민에 의해 도끼로 살해 당했고 보도에 따르면 저 2명의 시체는 얼굴이 바다쪽을 향하도록 한동안 허수아비처럼 막대기에 메달려 있었다고 한다.

3일 후 막대기에 매달려 있단 시체를 회수하기 위해 인도 해안 수비대 헬리콥터가 북센티넬 섬으로 갔을땐 2명의 시체는 막대기에 매달린게 아닌 매장돼있었고 매장된 시체를 회수하기 위해 착륙을 시도하자 화살과 창으로 무장한 센티넬섬 원주민의 공격을 받았고 아래 사진은 저때 촬영된 사진이다.

2006년 시체를 회수하려던 인도 해안 수비대의 헬기를 향해 활로 공격하는 북 센티넬섬 원주민들

인도 국적 어부 2명 살인 사건과 관련해 센티넬 원주민들을 살인 혐의로 고발을 해야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논란이 있었다.

살해 당한 어부 2명의 가족들은 센티넬섬 원주민들을 그냥 그대로 내버려 두라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2006년 사건과 관련해 1991년 센티넬 섬을 방문한적 있는 마드후말라 차토파디야이는 보통 사람들이 북 센티넬섬을 방문했을땐 과일 같은 선물을 가지고 갔지만 저땐 선물을 가지고 가지 않아 참변이 일어 났었을 수도 있고 원주민들이 헬기를 향해 활을 쏘려는 행동을 하는 사진이 배포된 것에 대해선 공격적이지 않은 센티넬섬 원주민들의 이미지를 훼손할 수 있어 잘못된 것이며 왜 북 센티넬섬 원주민들이 나중에 어부 2명을 매장한 사진은 배포하지 않느냐며 항변했다.

마드후말라 차토파디야이 가 1991년 첫번째 방문했을때 사진
마드후말라 차토파디야이 가 1991년 첫번째 방문했을때 사진
마드후말라 차토파디야이 가 1991년 첫번째 방문했을때 사진

센티넬섬 원주민들은 2004년 쓰나미 재해가 일어 났을때 피해 상황을 조사하러간 헬기를 향해서도 공격적인 행동을 한바 있고 아래 사진이다.

2018년 미국인 선교사의 죽음

2018년 11월 북 센티넬 섬에 기독교 전파를 하러간 미국 국적의 존 앨런 차우가 사망한 사건이 있다.

존 차우는 센티넬 섬에 가기전 훈련을 받았고 미국 기독교 선교협회에서 북 센티넬 섬으로 존 차우를 센티넬 섬 원주민들과 함께 생활하며 기독교를 전파하라는 목적으로 보냈었다.

존 앨런 차우
존 앨런 차우
존 앨런 차우

인도 정부가 허가를 내줄리는 만무했고 허가를 못 받은 존 차우는 불법으로 지역 어선을 타고 센티넬 섬으로 갔고 가기전 “신아, 여기가 니의 이름조차 들어볼 기회가 없던 마지막으로 남은 악마의 섬이냐? 이 부족이 영생할 수 있는 기회가 가까이 있다(니를 믿으면 죽어서 천국가 영생). 난 예수의 이름을 이 사람들에게 알릴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살해당하더라도 제발 이 부족이나 신에게 화를 내지 말아라… 내가 죽더라도 시체를 회수하러 오진 말아라”라는 글을 남겼다.

11월 15일 어선을 타고 북 센티넬섬 500~700m 근방까지 간 후 어선이 센티넬섬에 상륙하길 거부하자 존 차우는 방수가 되는 성경책과 함께 나무로 만든 작은 배를 타고 센티넬섬 해안에 상륙했다.

존 차우가 상륙하자 원주민들이 접근했고 존 차우는 그들에게 선물을 줬지만 원주민들은 존 차우에게 적대적인 행동을 했고 저에 존 차우는 원주민들에게 찬송가도 부르고 남아프리카 토착어도 해봤지만 의사소통은 되지 않았고 원주민들은 고성과 함께 적대적인 행동을 했다.

한 어린이가 금속으로 만든 화살촉이 달린 활을 쐈고 존 차우는 섬에서 떠났다.

11월 17일 존 차우는 다시 북 센티넬 섬으로 갔고 저땐 카누를 타고 어선을 떠나기전 어선의 선원들에게 자기를 내버려두고 북 센티넬 섬에서 떠나란 말을 남겼다. 어부들은 원주민들이 존 차우를 어디론가 끌고 가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봤고 존 차우는 다음날 해변에서 시체로 발견됐다.

인도 폴리스는 존 차우를 북 센티넬 섬 가까이 데려다준 선원들 7명을 체포했고 존 차우 사건은 살인 사건으로 분류는 됐지만 저 사건과 관련해 살인 혐의로 정식 고발된 사람은 없다.

미국 정부도 존 차우 살인범을 잡아 달라고 인도 정부에 요청을 하지 않을 것이라 확답했다.

인도 폴리스는 존 차우의 시체를 회수하려 몇차례 시도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언어와 생활

안다만 제도에 있는 섬중 하나인 북 센티넬섬의 원주민들과 다른 안다만 제도에 살고 있는 원주민들간 언어적으로 의사 소통이 되지 않아 센티넬섬 원주민들이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지 아는 사람이 없고 저 부분 때문에 북 센티넬섬 원주민들이 5~6만년 전부터 북 센티넬 섬에 고립되 살았을 것이라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현재 말은 통하지 않으나 센티넬섬 원주민들은 안다만섬에서 살다 6천년 전후쯤 자발적으로 근방에 있는 북 센티넬 섬으로 가서 살았고 6천년 동안 고립된 생활을 하다 보니 근방의 섬 원주민들과도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것이라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원주민들이 문자는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추정되고 물론 외부인들과 의사소통은 불가능하지만 언어는 있다.

북 센티넬 원주민들은 인종적으론 흑인으로 추정되고 아프리카에서 아시아쪽으로 이주한 초기 아프리카 원주민의 한 부류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 인구는 인구조사가 행해진 적이 없기 때문에 적게는 15명부터 많게는 500명까지 살고 있을 것이라 추산하나 보통은 50~200명정도가 북 센티넬 섬에 살고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저 사람들의 건강상태는 매우 건강하다.

해안 경비를 하는 북 센티넬섬 원주민들
해안 경비를 하는 북 센티넬섬 원주민들

북 센티넬 섬의 원주민들은 게, 갈메기 알, 거북이, 새등을 잡아 먹거나 코코넛같은 과일등을 먹는등 근방의 안다만제도 원주민들과 비슷한 생활 양식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고 북 센티넬 섬을 제외한 문명을 받아 들인 안다만제도 원주민들의 후손들은 2020년 지금까지도 문명을 거부하고 있는 북 센티넬 섬 원주민들을 안다만제도의 후손으로써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한다.

1870년경 촬영된 안다만제도 원주민 사진으로 위 사진의 원주민들이 어떤 부족인지는 확실치 않다.

센티넬섬 원주민들이 과일을 먹긴 하나 농작물을 기르는 농경생활은 하지 않는 것으로 봐서 고립된 생활을 한지 최소 7천년은 됐을 것이라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금속으로 화살촉을 만든 것으로 봐서 그렇게 오래 전부터 고립생활을 한 부족은 아닐 것이라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영어론 센티넬섬 원주민들을 센티넬리즈라고 호칭하고 있으나 저 부족 스스로는 자기들을 뭐라 호칭하는지 아는 사람이 현재는 없다.

의사소통은 되지 않지만 안다만섬 남부 원주민들이 사용하던 언어와 공통점이 있다는 주장이 있으나 확인할 방법은 없다.

안다만제도의 원주민들인 옹게 부족과 자라와 부족의 DNA 검사 결과 아프리카의 피그미족과 유사성이 있다 나왔고 센티넬섬 원주민들도 약 4만년전 아프리카 대륙을 떠났었던 피그미족의 한 부류로 추정을 하고 있다.

센티넬섬 원주민

2004년 약 22만 8천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되는 쓰나미가 닥쳤을때 센티넬 원주민들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현재는 모른다.

안다만과 니코바르 제도

안다만과 니코바르 제도 동쪽엔 버마(미얀마)가 있고 남쪽엔 말레이시아가 있다.

안다만과 니코바르 제도는 안다만 제도와 니코바르 제도등 크게 2개의 섬묶음으로 분류해 안다만과 니코바르 제도라 부른다.

안다만 제도엔 大안다만 부족, 옹게부족, 자라와부족 그리고 센티넬부족(북 센티넬섬 원주민)등 4개의 부족이 있고 니코바르 제도엔 숌펜 부족과 니코바르 부족등 2개의 부족이 있다.

안다만 제도와 니코바르 제도의 지도를 보다시피 가깝지만 안다만제도 원주민들은 인종적으로 흑인이고 니코바르제도 원주민들은 인종적으로 몽골로이드다.

6개의 부족중 센티넬부족을 제외한 부족들은 모두 외부문명과 접촉을 했지만 일부 지역은 현재도 인도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관광이 가능하다.

안다만 제도의 원주민들은 최대 2만 6천년 전부터 안다만제도에 정착해 살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고 니코바르제도에 살고 있는 몽골로이드 족은 버마(미얀마)나 말레이시아 쪽에서 수천년전 니코바르제도에 도착해 살고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니코바르 부족을 제외하면 나머지 4개 부족은 다 합처 모두 약 1천명쯤 되나 센티넬 부족은 북 센티넬 섬에 몇명이나 있는지 모른다.

약 3만명으로 추정되는 니코바르 부족은 문명을 적극적으로 받아 들였고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도 많지만 여전히 많은 니코바르 부족 사람들이 자기들이 니코바르 부족임을 잊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아래 동영상은 니코바르제도에 살고 있는 200~300명으로 추산되는 숌펜부족의 동영상이다.

숌펜 부족과 니코바르 부족은 같은 몽골로이드족(중국, 몽골, 일본, 베트남, 한국인이 대다수고 인도인은 대다수가 코카서스(백인)로 인도에 몽골로이드는 3%다.)이긴 하나 서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다.

많은 국내인들이 착각을 하는것 같은데 인도와 중동인은 대부분 백인으로 분류되는 코카서스인종이고 한국인이 속한 인종인 몽골로이드의 90%는 중국인들이다.

숌펜 부족은 한때는 니코바르 부족에 대응해 자기들만의 영토가 있었을 만큼 많은 인구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는 다른 부족들과 마찬가지로 외부와 접촉해 병에 걸려 죽거나 떠나거나 영역을 잃거나 해가 200~300명정도가 고유 생활 방식대로 살고 있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센티넬 부족과 마찬가지로 원주민들이 병에 걸릴 위험성때문에 자세한 인구조사는 실행되지 않았다.

아프리카를 떠나 안다만제도에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大안다만 부족, 옹게부족, 자라와부족 그리고 센티넬부족은 1개의 아프리카 부족이 고립생활을 하며 4개의 부족으로 갈라진게 아니라 빙하기때 육로로 여러 흑인 부족들이 안다만제도에 도착해 정착생활을 했을 것이라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안다만제도 원주민 1800년대와 2004년 인구 비교

위 그림은 1800년대 초와 2004년 안다만제도 원주민들 인구 변화를 표한 그림이다.

1. 녹색으로 표시된 大안다만 부족은 1800년대 초엔 대 안다만섬 상당부분에 걸쳐 살았지만 2004년엔 보다시피 안다만섬 중부 오른쪽 작은 영역에서만 살고 있다. 大안다만 부족은 1700년대 말엔 5천명 가까이 있었을 것으로 추산됐지만 1901년 600명으로 급감했고 1961년 19명으로 사라지기 직전이었지만 2010년엔 다른 부족과 혼인을 통해 52명으로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2. 노란색으로 표시된 자라와족은 1800년대 초기엔 안다만섬 남부에 살았지만 2004년엔 서부에 걸쳐 살고 있고 2011년 인도 정부의 인구조서에 따르면 약 380명이 남아 있다.

3. 주황색으로 표시된 장길족은 1800년대 초엔 루틀랜드 섬에서 살았지만 현재 장길족은 사라지고 없다.

4. 빨간색으로 표시된 센티넬 부족은 지금도 북 센티넬 섬에서 살고 있다.

5. 파란색으로 표시된 옹게 부족은 1800년대 초엔 그림을 보다시피 리틀 안다만섬 전역에서 살고 있었지만 2004년 지도를 보다시피 현재는 북부와 남부의 일부지역에서 살고 있고 2011년 인도정부가 실시한 인구조사에 따르면 101명이 남아 있었다.

안다만 섬에 살고 있는 大안다만 부족, 자라와족과 안다만섬 남부에 있는 리틀 안다만섬에 살고 있는 옹게 부족은 언어가 서로 연관성이 없는 것으로 보고 있고 센티넬 부족의 언어는 자세한 조사를 할 수 없으니 확인할 길은 없으나 리틀 안다만섬에 살았었던 옹게 부족의 언어와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을 하고 있지만 옹게부족과 센티넬부족간 의사소통은 되지 않는다.

아래 동영상은 옹게(옹기) 부족 동영상으로 다큐멘타리가 촬영된걸 보면 알겠지만 옹게 부족이 문명을 받아 들인 이후다.

문명을 받아 들인 후 기독교를 받아 들이는등 적극적으로 외부와 동화된 니코바르 부족을 제외하면 안다만과 니코바르 제도 원주민들은 인구가 급감했고 일부 사람들은 원주민들을 동물원 동물 취급하거나 원주민 거주지역에 침입해 몹쓸짓을 하는등 문제가 계속해서 발생하자 인도 정부는 안다만과 니코바르제도 원주민 보호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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